프로그래밍 강의를 준비하다 보면 이미 알고 있는 개념도 '명문화' 할 필요가 있다. 알고 있는 개념을 90%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일반적인 업무 현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강의는 90%가 아닌 100% 정확한 개념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지식이라도 다시 검증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가진 지식을 여러 각도로 담금질해보는 것은 지식의 여러 측면을 견고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왜 이것이 필요한 것인가?" "이것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기존 방식보다 장점은 무엇인가?" "반면 단점은 무엇인가?" "이것을 왜 알아야 하는가?" 등등 수많은 잠재 질문들은 지식을 다각도로 보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다각도로 다듬어진 지식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수준의 지식이 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표현과 전달 방식을 풍성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강사의 잘못이다. 괜히 1타 강사가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강사들이 다른 지식을 전하고, 1타 강사만 온전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같은 지식을 전달해도, 전달력, 지식의 순서, 해석의 방식,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 예시 등에서 차이가 생긴다. 똑같은 재료(지식)를 가지고 요리하는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최고의 미식이 되기도 형편없는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지식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혼자만 지식을 가지고 낑낑대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접근이다. 지식이 힘을 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 먹기 좋은 형태로 가공되어야 한다. 딱딱한 부분을 믹서기에 갈아 부드럽게 만들고, 식감을 살려 씹는 재미를 주어야 할 곳에선 제대로 식감을 살려주어야 한다. 강의를 한다는 것은 지식을 다루는 요리사가 된 것이다.
그저 모르는 것들을 나열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대부분의 AI가 해줄 수 있다. 인간 강사가 AI보다 낫기 위해서는 맛이 달라야 한다. 전달되는 지식의 맛이 달라야 한다. 흡수되는 지식의 정도가 달라야 한다.
동일한 약을 처방해도 환자에 따라 약의 흡수가 다르다. 프로그래밍에서는 학생마다 배경 지식과 실력, 용어에 대한 이해도, 경험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일반화하여 측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입문의 경우에는 각자의 재능에 기반해서 지식의 흡수 정도가 정해진다면,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지고 최소한 직업을 가진 수준에 도달한 이들이라면 기대할 수 있는 흡수의 정도가 일반인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요즘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이런 분야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예 소화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고려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즉 환자식에 가깝게, 아주 묽은 죽을 만드는 것처럼 지식이 전달되어야 하니 재미도 없고 맛도 없다. 특히 실력이 좋은 이들에게는 죽과 같은 지식은 싱겁다.
자극적인 지식을 원한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성장한 이들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 맛을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 그게 내가 바라는 수준의 강의고, 모두를 위한 강의를 만들 생각은 없다.
이것을 꾸준히 할지 아니면 한철의 일처럼 몇 개월 정도만 집중해서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깊고 장대하게 지식을 정돈하고 있다. 다시 정돈하고, 서로의 관계를 정돈하고, 예시를 준비하고, 명문화된 개념으로 정리하고.
이 과정이 지식을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 되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내 강의가 한국 IT 시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지식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도움을 얻은 이들이 정말 많아지지 않을까. 시작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것이 정말 맛있게 잘 준비된 요리이며, 세상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담고 있다면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비전을 품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