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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와 온실 속 화초

Han SanghoonHan Sanghoon·Seoul·KR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을 J 성향이라고 우월한 것처럼 밝히는 이들이 종종 있다. 'T가 F보다 우월하다', 'J가 P보다 낫다' 는 등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자랑하는 듯 하다. 내 경험을 비춰보면 J의 특징은 계획적인 것이나 판단(Judgement)에서 디테일하다기 보다는 상황에 대한 통제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 가까웠다. 예측불허의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기에 구체적인 게획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J의 실행력은 P보다 우월할까? 딱히 그렇지도 않다. 내가 만나본 많은 J, 그 중에서도 사업가 형이라고 불리는 ESTJ, ENTJ 중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어떠한 변명을 해서라도 진행하지 않고, 계획만 업데이트 되는 이들이 상당하다. 내 경험상 이것이 MBTI적 특징이라기 보다는 ESTJ나 ENTJ의 성향을 부러워하는 이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실제로 ENTJ인 사람들이 이런 특징을 보이기도 하지만 ENTJ를 동경하는 이들에게서 더 그런 현상이 보였던 것 같다.

나는 개개인의 성격이 우월함과 열등함이 딱히 존재하지 않고, 상황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과 기준, 우선시하는 경향과 기피하는 경향의 결과로 보는 편이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성격이 '생존에' 좋은 성격이 될 수도 있고, 아닌 경우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사람들 중에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판단 없이 수동적으로 사는 이들을 "노예 근성"에 찌들어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한 번 생각해보자. 인류 역사에 노예는 인권의 개념보다 오래됐고, 전 인류적으로 보편적으로 있던 계급이었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된 지난 몇 세기, 정확히는 불과 1~2세기에 들어서야 노예(또는 노비) 역시 똑같은 인격체를 지닌 인간으로 대등하게 생각하게 됐다. 노예가 사회에 중요한 구성원으로 있던 시절에 노예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예 근성이 필요했다. 만약 노예가 노예 근성이 없이 자신의 처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명령에 불복종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면, 노예로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할 것이다.

적자생존의 규칙에 따라 인간은 각 시스템에서 적합한 성격이나 기질, 유전적 형질을 가진 이들이 자손을 늘리며 진화해왔다.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여러가지로 이유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에게는 노예 근성이 주체적 사상보다 생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유는 우리가 가진 지성, 환경, 능력, 사회적 시선 등 여러 조건들이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로 거듭나고 있지만 당장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국가에서는 신분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예 사상적으로도 통제 받는 국가들도 많다. 그곳에서 노예로 라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진화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우월감을 가지는 이들을 싫어하는 듯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온갖 형태의 특권들과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좋은 것들, 그리고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얻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낮은 이들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 역시 사회적 진화였을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고귀한 이들과 천한 이들이 서로 겸상한다면 고귀한 사회에서는 천한 것들과 어울리는 별종을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고, 배척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객관적으로 언더독에서 출발한 사람이다. 시골의 초등학교를 나왔다. 제대로된 학원에서 공부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가정교육 보다는 가정 불화를 목도하며 살아왔다. 나와 어린 시절 친했던 모든 이들은 나와 비슷했다. 부모님은 서로 싸우고, 집에는 먹을만한 반찬이 없었다. 간식을 사먹을 돈도 없었고, 고기를 먹을 일도 별도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텅 빈 집에 오갈 곳 없는 친구들과 형들의 상황은 똑같았다. 어두컴컴한 집구석에 보살피는 어른 한 명 없는 곳에서 온갖 방황하는 비행청소년들. IMF 이후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내던 부모 세대의 모습 아래에서 자라온 이들이다.

나를 비롯해 우리 집안 모두가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언더독이었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나를 하대하던 이들은 내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자 나를 대하는 방식에 혼란을 느꼈다. 친구로 상종하지도 않던 이들이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이후에 사업을 하고, 사업을 해서 직원을 채용하고... 하루하루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는 걸 느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출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지낸다. 오히려 나는 오만하고 따뜻한 길에서 천한 이들은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이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과는 비즈니스를 해도 결이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드롭했다.

사회가 극변하기에 더이상 누가 위고 누가 아래고 할 것 없는 시대가 됐다. 아무리 천대받는 이들도 어느날 유튜브로 스타가 되기도 하고, 코인으로 부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 돈 많다고 자랑하던 인물들은 욕망에 눈이 멀어 부동산에 엄청난 레버리지를 들여 무리한 투자를 하고, 이제는 생활비를 담보 대출 받아가며 근근히 버티는 "부자"들도 허다하다. 누가 오만할 수 있을까. 이 사회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와 같다. 누가 안전하다 말할 수 있고, 누가 자신은 현명하게 투자해서 항상 돈을 증식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오만한 이들을 경계하고, 성공만 한 이들을 경계하며, 바닥의 두려움을 모르는 온실 속 화초를 경계한다.

  • #MBTI
  • #우월함
  • #열등함
  • #언더독
  • #탑독
▩ END · posted · 2024-05-08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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