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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鍊眞金

Han SanghoonHan Sanghoon·Seoul·KR

나는 내 제품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기존의 문법에 대해 무척이나 도전적인 해답만을 요구하는 상태에 가깝다. 왜냐면 나는 이미 대부분의 기존 방식을 시도해 보았고, 그것의 불완전함과 미숙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미숙한 방식으로 후발 주자가 선두 주자를 이기는 경우는 없다. 나는 후발 주자로 들어와 후발 주자로 살며 간신히 땅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나 먹기 위해 이 시장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나는 제왕이라 불리는 제품들과 경쟁하고 그들보다 내 제품이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장에 들어왔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벽을 마주한 것이다.

벽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해결하지 못할 난관이라 여기지만, 벽은 그 벽을 넘는 자들에게는 보호막이 되며, 경쟁자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패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벽을 만났다는 것은 한계에 도달해 망했다는 결론이 아닌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에서 벽은 그 사업이 다음 단계에 어울리는 참가자로 입장할 수 있는지 탈락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지점인 셈이다.

나 역시 그러한 벽들에 도달하고 있고, 몇몇의 벽들을 넘어가며 사업을 키워가고 있지만 빈틈을 찾아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대한 벽 몇 개는 여전히 공포스럽기도 하다. 이 벽들은 나와 같은 플레이어들에겐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선택할 것은 다음과 같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거나, 또는 이 벽을 부수거나, 아니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빈틈을 찾거나, 아니면 입장권을 사거나.

대다수의 사업가들은 입장권을 사는 방법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돈이 떨어지면 그들이 건너뛴 벽들이 사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깐의 통행권을 얻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벽을 통과한 적이 없었고 그저 정기 구독권처럼 벽을 통과하는 시간제한 티켓을 구매한 것이다. 물론 그것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매우 현명한 방법이고, 벽 밖으로 쫓겨나기 전에 더 안 쪽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 나와 같이 벽 밖에서 길을 찾는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몇몇 사람들은 해선 안될 짓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땅굴을 파거나 아니면 그냥 현시점에서 만족해 풀뿌리를 캐 먹는 삶을 택하기도 한다. 각자의 선택이니 뭐라 말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풀뿌리를 캐 먹으며 그것마저도 경쟁할 생각은 없다.


더 높은 기준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시도들을 충분히 검증했을 때, 마주할 수 있는 합리적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주관식 문제에 답으로 추정되는 값을 여러 개 입력했는데도 전부 다 실패했다면, 이제는 주관식 문제 자체를 다시 검토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기존에 해석 방식과 다르게 접근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몇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나는 거친 토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속이 보이고, 잘 보이기 위한 겉치레가 거의 들어가지 않으며, 기능에 충실한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친 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거친 면이 전혀 없는 매끈한 그릇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이고, 내가 판매해야 하는 시장이 매끈한 그릇을 사랑하는 사람 모임이라면 더욱더 이 문제를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이제 이 관점에서 문제는 2가지 방향성으로 나뉜다. 첫째는 나의 거친 것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아주 거칠지만 아주 단단하고 견고한. 이것 자체의 매력을 밀어버려 매끈한 그릇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빠질만한 거칠고 담대한 그릇을 파는 방식이 있고, 또는 아예 톤을 바꿔 매끈함으로는 비견될 곳이 없는 수준으로 매끈함의 기준을 끌어올리는 방향도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방향 모두 가능한 방향이고, 굳이 표현하자면 전자는 소수에 집중하고, 후자는 다수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나는 소수에 집중한 적도 없고, 다수에 집중한 적도 없고. 충분히 거칠지도. 충분히 매끄럽지도 못했다. "어중간했다"라고 말할만하다. 사람들은 어중간한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학창 시절을 기억할 때도 공부를 잘하거나 아주 못하는 사람을 기억할 순 있어도 어중간한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는 드물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가진 살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극단적 살. 그 어떤 곳에서도 본 적 없는 아주 거칠고 과감한 시도. 적어도 그것은 유일무이한 측면이 있기에 힘이 실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거의 재창조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미 과거에 그런 시도를 했었다. 내가 만들었던 새 탭 확장 프로그램인 에어데스크는 기존엔 전혀 없는 모든 UX 개념이 새 탭에 들어간 혁신적 제품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혁신적 제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혁신적 제품의 전형적 특징은 소수에게는 매우 매력적이어서 팬덤을 만들 수 있고, 그 덕분에 근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에어데스크를 다시 쓰고 싶다"는 연락이 올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 제품의 반대는 제품 경험이 기존의 경험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맥락이 있다. 나는 그것을 줄이기 위해 별 짓을 다 했지만 결국은 별 다른 기능도 없이 메모와 시간 보여주는 앱을 이기지 못했다. 통탄할만한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도박수를 두고, 도박수는 언제나 많은 것을 얻거나 잃는 게임이니.

나는 앞선 경험에서 도박수에 가까운 플레이를 해보았기 때문에 혁신적 UX가 가지는 어려움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선을 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데 신경 써왔다. 그 덕분에 매년 수십 개의 제품을 만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소위 말하는 장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장인의 경지에 오른 것과 그것이 하나의 제품을 수억, 수백억에 팔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다. 나는 만드는 것은 도가 텄어도,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 가지고 싶은 것, 필수제에 가까운 것을 만드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팀플레이부터 마케팅, 이벤트, 소셜 활동, 그리고 금융 전문가들과 일을 해서 자본 플레이를 해보거나 또는 마케팅 전문가라는 놈들을 불러서 일을 해보기도 했으나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다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포기한 상태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미 포기를 많이 해봤다. 살면서 포기한 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고 그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었기에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고통이 상당했었다. 그러나 포기를 하지 않기도 한다. 오히려 반대로 시스템을 정련한다. 불이 금을 제련하듯 말이다. 뜨거움이 금을 적당히 녹인 후 다시 굳히며 불순물이 가득한 광물들이 정련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더 높은 기준으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시도가 실패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이 나를 억압하고, 나에게만 불공정한 기준을 요구해서 실패했다면 나는 세상을 욕해야겠지만, 세상은 나에게 동등한 기준을 요구했고, 동등한 알고리즘으로 평가했다. 그러니 나는 내 기준을 높여야 하는 것이지 세상을 욕해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기에 나는 불 속에 있는 쇠가 된 심정으로 매일 같이 겪는 실패들을 담금질 삼아 연단되고 있다. 더 나은 시스템.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 그리고 이 과정은 쉬운 길은 아니다. 솔직하게는 매일매일 건실하게 이 담금질의 상황을 견디는 것은 아니다.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로기 상태에 놓이는 순간이 꽤 존재하며, 때로는 그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상당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아직까지 제련한 금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상을 제패할 금은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더 아름답게 가공된 하나의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제품이 고칠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내 제품은 더 나아져야 하고, 더 높은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제품은 내가 운영하는 회사의 표면적 제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대다수가 모르는 나의 다른 일들을 포함한다) 시장은 감정적으로 이동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이성 위에 움직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조정을 존재하고, 저평가된 주식이 오르는 순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제련하는 대장장이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 거친 불길에 눈이 맵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내 인생의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자 이 길을 택했고, 동시에 나는 나의 제품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 계속된 담금질의 시간이다. 불 속에서 불순물을 녹여내는 시간이다.

▩ END · posted · 2026-06-15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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