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둘러보면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굳게 확신하는 이들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를 '반성 주기'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 애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을 반성할 상황은 하루에도 여러 번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는 반성을 통한 개선 프로세스가 전무한 사람임을 뜻한다.
반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반성할 것이 없을 때엔 자신의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 또는 자신이 운영하는 조직, 회사가 부족함은 없었는지 살핀다. 욥의 경우를 보면 욥은 의인으로 살았으나 자신이 모르고 지은 죄를 위해서도 회개의 제사를 올렸고, 가족들의 죄를 위해서도 대신 제사를 올렸다. 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극심한 모순 속에 사는 사람으로 이러한 이들은 갱생불가능이라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사람을 보고 갱생불가라니. 너무 거친 표현이 아닐까 싶지만 갱생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다. 갱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성이라고 하는 사전 작업이 존재해야 한다. 반성할 것이 없는 사람이 갱생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만 생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반성은 영혼의 목욕과 같다. 자신의 영혼에 더러워진 것들을 닦아내는 과정이고, 더러움을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반성을 하지 않고, 반성을 위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와 행실에 대해 씻어내는 과정 없이 더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최근에 한 반성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스스로를 돌이켜 성찰하고, 후회하고, 잘못을 깨닫고, 개선할 점을 찾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이들이 나이를 먹어도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결과일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실력이 나아지기 위해선 자신의 부족함을 피드백해주고 더 나은 방향을 알려주는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계 최정상급의 선수들일수록 더 혹독하게 자신을 피드백해 줄 사람을 찾는다. 모두가 완벽하다 말하는 선수들도 스스로의 성찰만으로는 부족해서 타인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대체 세계 최고는 고사하고 변변한 위치에도 못 간 사람들이 무슨 배짱으로 피드백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역시 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의 위치는 그들이 정한 것이다. 아무도 그들이 그곳에 멈춰서 그런 평가를 받고, 그런 대접을 받으라 강제하지 않는다. 발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결사항전으로 그것을 거부해 왔으니 그들이 나이가 50살, 60살이 되어도 어린 시절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것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하찮았는지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말을 전하고, 지식 있는 자는 지식을 전하고, 아름다움을 가진 자는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반성하지 않는 자는 세상이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줄 때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도 기회가 모두 사그라들고 나면 그들 곁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슬픈 일이지만 우린 모두 매우 적합한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 세상은 의도를 가지고 어떠한 인물만 극단적으로 평가절하하기 쉽지 않고, 극단적으로 올리기도 쉽지 않다. 특히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누군가의 회초리를 맞게 될 것이다. 아무도 때리지 않는다고? 아니 이미 때리고 있다. 무관심으로. 하찮은 대우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로. 그것을 맞으면서도 반성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겐 '매'마저도 약이 되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